줄거리
영화는 두 개의 시점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로스앨러모스에서 수행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전후 그가 미국 정부의 의심을 받으며 청문회에서 심문당하는 과정이다. 젊은 시절의 오펜하이머는 뛰어난 지능을 가진 이론 물리학자로서 유럽에서 최신 물리학을 배우고 미국으로 돌아와 연구에 매진한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은 나치 독일이 먼저 핵무기를 개발할 가능성을 우려했고, 이에 따라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오펜하이머는 그의 과학적 통찰과 지도력 덕분에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로 임명되며, 뉴멕시코의 로스앨러모스에서 수많은 과학자들과 함께 핵무기 개발에 몰두하게 된다. 과학자들의 노력 끝에 1945년 7월 16일, 인류 역사상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한다. 폭발이 일어나자 오펜하이머는 바가바드기타의 한 구절,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를 떠올리며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곧이어 원자폭탄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면서 엄청난 인명 피해를 초래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오펜하이머는 핵무기의 사용과 확산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미국 정부와 갈등을 빚는다. 특히 수소폭탄 개발을 반대한 그의 입장은 군부와 정치권에서 문제시되었고, 과거 공산주의자들과의 연관성까지 문제 삼아 청문회에서 혹독한 심문을 받게 된다. 그는 공산주의 성향이 있었던 전 애인 진 태틀록과의 관계,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 가졌던 정치적 신념 등이 공격받으며 철저히 몰락한다. 결국, 미국 정부는 그에게서 안보 인가를 박탈하며 공직에서 배제한다. 영화는 그의 과학적 업적과 정치적 희생을 교차하며 보여주며, 마지막 장면에서 오펜하이머는 동료 과학자였던 아인슈타인과 대화하면서 핵무기가 불러올 전 지구적 파괴 가능성을 언급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당시 배경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요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서 진행된 맨해튼 프로젝트와, 전후 냉전 시기의 정치적 분위기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핵무기 개발
1939년, 독일이 원자핵 분열을 이용한 핵폭탄을 연구하고 있다는 정보가 미국에 전해지면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원자폭탄 개발을 결정한다. 당시 유럽에서는 이미 전쟁이 한창이었고, 미국도 일본과의 태평양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고, 이 과정에서 오펜하이머가 총책임자로 발탁되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극비리에 진행되었으며, 로스앨러모스, 오크리지, 시카고 등 여러 연구소에서 과학자들이 참여했다. 오펜하이머가 주도한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는 이론 물리학자들과 실험 물리학자들이 힘을 합쳐 원자폭탄의 설계와 실험을 진행했다.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 사막에서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고, 같은 해 8월 6일과 9일, 미국은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전쟁을 종결시켰다. 그러나 이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초래했고, 핵무기의 윤리적 문제를 둘러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전후 냉전과 오펜하이머의 몰락
전쟁이 끝난 후,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이 시작되면서 핵무기 경쟁이 본격화되었다. 1949년, 소련이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면서 미국은 핵무기 개발을 더욱 가속화했고, 수소폭탄(H-bomb) 개발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오펜하이머는 보다 강력한 핵무기 개발에 반대하며, 핵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태도는 당시 강력한 반공주의를 주도하던 정치인들에게 위협적으로 보였다. 특히,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이 주도한 공산주의자 색출 운동(일명 매카시즘)이 기승을 부리면서, 오펜하이머는 그의 과거 공산주의 성향 때문에 의심받게 되었다. 1954년, 그는 미국 원자력위원회 청문회에서 혹독한 심문을 받았고, 결국 안보 인가를 박탈당하며 정부 프로젝트에서 배제되었다.
메세지
오펜하이머는 단순히 핵무기의 개발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과학과 윤리, 그리고 정치적 음모가 결합된 복잡한 서사를 통해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과학과 윤리의 충돌이다.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을 개발했지만, 그것이 실전에서 사용되면서 엄청난 인명 피해를 초래하는 것을 보고 깊은 죄책감을 느낀다. 과학적 발견이 반드시 인류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권력과 정치의 냉혹함이다. 정부는 필요할 때는 오펜하이머를 영웅으로 떠받들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는 그를 불편한 존재로 여겨 제거해 버린다. 이는 국가 권력이 과학자를 어떻게 이용하고 버리는지를 보여주는 예시로 작용한다.
핵무기의 위협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다. 영화는 오펜하이머가 아인슈타인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핵무기의 개발이 단순히 미국과 일본 간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냉전 시대를 거쳐 현재까지도 핵무기 문제는 국제 사회의 핵심적인 논쟁거리이며, 영화는 이를 되새기게 만든다.
총평
오펜하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특유의 강렬한 연출과 논리적인 서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IMAX 카메라로 촬영된 장면들은 역사적인 순간들을 더욱 실감 나게 전달하며, 특히 트리니티 실험 장면은 압도적인 긴장감을 선사한다. 킬리언 머피는 오펜하이머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그의 내면의 갈등과 복잡한 심경을 깊이 있게 표현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한 루이스 스트로스 역할 또한 뛰어나며, 이 인물이 오펜하이머를 정치적으로 몰락시키는 과정이 섬뜩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다만, 영화의 구조가 비선형적으로 진행되며 정치적 공방이 많아 일반적인 전기 영화보다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또한, 오펜하이머의 개인적인 내면을 강조하는 만큼, 전쟁 속 희생자들의 시각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을 여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펜하이머는 현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의 삶을 깊이 있게 조명한 작품이며, 과학과 윤리, 정치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하는 데 있어 매우 뛰어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놀란 감독은 단순한 역사적 재현을 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을 던지며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